신소재공학과 98학번 박상조 동문은 현재 독일에서 동국제강 유럽지사장(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직 중 미국, 브라질에 이어 3번째 경험이다. 동국제강 그룹에서 20년 차 직원 중 해외주재 근무를 3번이나 한 인물은 박상조 부장이 유일하다. 업무 능력과 더불어 재학시절 ‘토익 최고점수’에 등극할 정도로 영어 실력이 출중했던 점도 작용했다.
그의 부친은 박창순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다. 개교 때부터 전기•전자•통신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2017년 정년 퇴임했다. “‘해본 것은 해본 것만큼 경험이 쌓이는 것이니 그만큼 이익이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인생을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박 동문은 “한기대는 저를 준비된 인재로 만들어 주었듯이, 한기대에 입학하는 수험생들에게도 많은 경험을 쌓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현재 활약상은 ‘일주일에 4개국은 기본! 유럽 전역을 동네처럼 누비는 독일 주재원의 하루’라는 유튜브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hAnZB9s0N8)

▲ 신소재공학과 98학번 박상조 동문
Q1) 한기대는 어떤 이유로 입학을 하게 되었는지요? 아버님께서 교수님이신 점도 영향이 있지 않았는지?
한기대로의 진학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버지께서 교수님으로 재직하고 계셔서 누구보다 학교의 저력을 알고 계셨던 터라 저에게 그 부분을 많이 어필하셨습니다.
항상 자식들이 잘되길 바라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인데, 그렇게 좋다고 하시는 학교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관심이 있었던 철강을 공부하기 위해 신소재공학(입학 당시 금속*재료공학과)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Q2) 졸업 후 언제 동국제강에 입사해서 주로 어떤 업무를 해오셨는지요?
2005년 동국제강 입사하여 포항제강소에서 현장 근무도 하였습니다. 본사에서 설비투자 기획 업무를 하면서 지속해서 공장/현장과 밀접한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당진 신규 후판 공장 건설, 포항 2후판 공장 신예화, 형강공장 합리화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Project Manager 역할을 하였습니다. 미국 뉴욕, 브라질 Fortaleza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했고, 현재 3번째 주재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동국제강 그룹에서 20년 차에 3번의 해외 주재는 제가 처음입니다.
Q3) 24년 4월부터 유럽지사장님으로 근무 중이신데요.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은 규모(면적, 인구수)에 비해 철강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수출 품목 중 철강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동국제강 그룹 內 동국씨엠이 생산하는 도금/컬러강판을 유럽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철강은 Down Stream으로 갈수록 고객사 요구조건이 많아서 제품사양 등이 복잡해지는데, 현지 기술 영업을 진행하며 고부가제품 판매 확대를 진행하고, 신규 고객사 확보와 신규 시장 개척 업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Q4) 대학 시절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추억이 있다면?
98년도 입학할 당시에는 학교가 지금보다 많이 작고 아담했습니다. 학교 주변에 야식을 먹을 수 있는 곳도 진등식당, 학사당구장 (라면 판매) 등 많지 않았죠.
1학년 1학기 MT 때 집에서 가지고 왔던 가스 버너, 프라이팬을 MT 후 어머니께 반납하지 않고, 기숙사에서 보관하며 기숙사 뒤 풀밭, 운동장, 공학관 뒤편에서 야식을 해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신한아파트 슈퍼에서 부침가루, 카레, 쌀, 양파, 파 등 배달).
또, 신소재공학과는 98학번이 1회 입학생인데, 교수님들께서 처음 받는 학생을 어떻게 하면 치열한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로 만들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셨습니다. 교수님들은 직접 과 내 영어 모임도 주선해서 만드시고, 실험실을 24시간 개방해 주시는 등 저희가 마음껏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셨습니다.
Q5) 대학 시절 전공 수업 등이 현재 하시는 업무나 사회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보시는지요?
포항제강소 품질관리팀에서 근무할 당시, 제품 개선, 신제품 개발을 위한 화학성분 설계, 열처리 조건 설정 업무를 진행할 때 철강 관련 전공 지식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1학년 때 탄소강 미세조직을 관찰하기 위한 실습이 제 기억으로는 주 6시간 (3시간 x 2회)이었고, 학점은 2점밖에 주지 않았는데, 그때 배운 내용이 실제 회사 업무에 적용되었어요.
설비투자기획 업무 중 공장과 설비제조사와 미팅을 진행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신규 공장의 시험실 장비 구매 검토를 할 때는 학교 실습시간에 직접 써봤던 장비들을 구매하게 되어 학창시절 기억이 많이 났습니다.
물론 영업 업무를 할 때도 제품의 제일 기초적인 지식을 직접 몸으로 배운 덕분에 지금도 잊지 않고 실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Q6) 졸업한 후 한국기술교육대의 위상이 어느정도 향상되었다고 보시는지요?
한기대를 졸업한 지도 벌써 20년이 되어갑니다. 제가 입학 할 당시만 해도 한국기술교육대학교를 직업훈련학교로 오해하신 분들이 많았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동문이 사회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준 덕분에 한국기술교육대학교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학교 외관도 20년 전과 많이 달려져서 학생들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Q7) 아버님을 대학 교수로서 그리고 인생의 선배님으로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와는 전공이 달라 수강한 적이 없어서 강의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현직에 계실 때, 도서관장, 교무처장 등 학교에서 강의 외 많은 역할을 하신 일을 찾아서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래전 저에게 본인은 '하다 말면 안 한 것만도 못하다'는 속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아버지는 '해보고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되고, 해본 것은 해본 것만큼 경험이 쌓이는 것이니 해본 만큼 이익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Dr. Strange를 연기한 Benedict Cumberbatch 배우의 'Stop thinking and just do' 연설보다 20여 년이나 앞서 저에게 '일단 해보면 된다'라는 인생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Q8) 우리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수험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학교 다닐 때 영어 공부가 재미있어서, 전공보다 영어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시기도 있습니다. 그 덕에 당시 있었던 ‘한기대 기네스’에 토익 최고점수로 등재도 되었습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해외 관련 업무를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포항제강소로 발령을 받으면서 해외 관련 업무는 당분간 접어둬야겠다고 했었는데요.
본사에서 영어를 잘할 줄 아는 직원이 필요하던 때에 제가 레이더에 떠서 설비투자기획팀으로 부서 이동하면서 해외 설비 메이커와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20년이 지난 지금 3번째 해외주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재학 시절 총장님 강연 중,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전공도 열심히 하면서 영어 공부도 틈틈이 해놓은 덕분에 저에게 많은 기회가 왔었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기대는 저를 준비된 자, 준비된 인재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많은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며, 준비된 인재를 양성하는 한기대로 입학하는 것을 적극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