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상황을 ‘보는’ 일이 아니라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하는’ 일이다. 한국기술교육대학교(총장 유길상) 창업동아리 ‘AutoSafer(오토세이퍼)’는 바로 이 문제에 주목했다.
오토세이퍼는 지난 7월 27일 열린 제4회 재난안전데이터 활용 창업경진대회에서 ‘디지털트윈 기반 재난 대응 의사결정 지원 및 도상훈련(TTX) 시스템’을 출품해 대상인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연구실에서 시작한 기술이 실제 현장의 문제를 만나 제품으로 발전하고, 마침내 전국 단위 재난안전 분야 창업경진대회에서 최고상을 거머쥔 것. 수상작의 이름은 ‘트윈세이퍼(TwinSafer)’다. 기존에 개발해 온 인파 관리 시스템의 핵심 기술을 재난 대응 영역으로 확장했다. 재난 상황실에서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이다.
‘사람의 안전을 위한 창업동아리’
오토세이퍼의 출발점은 연구실이었다. 대표인 이상화 씨는 학부 연구생 시절 시뮬레이션과 디지털트윈 기술을 공부하던 중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았다. ‘사람이 모여서 발생하는 사고라면 사람의 흐름을 미리 계산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창업의 출발점이 됐다.
그는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2023년 11월 23일 교내 창업동아리 오토세이퍼를 만들었다. 이후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제품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팀원을 모았다. 아이디어가 기술을 넘어 실제 작동하는 제품으로 발전한 시점이었다.
오토세이퍼는 경영과 컴퓨터공학을 아우르는 4명의 학생으로 구성돼 있다.
이상화 대표는 대학원 경영학과 기술경영전공 석사과정에서 사업화와 기술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학부에서는 산업경영학부 혁신경영전공과 모빌리티 SW/AI 융합전공을 이수했다. 박태영 부대표는 산업경영학과 컴퓨터공학을 함께 전공하고 있으며 군중 관측 기술을 담당한다. 컴퓨터비전을 활용해 CCTV 영상에서 사람의 수와 이동 흐름을 분석하는, 시스템의 ‘눈’에 해당하는 기술이다.
컴퓨터공학부 정해성 학생은 관제 대시보드를 맡아 분석된 위험도와 조치 우선순위를 현장 담당자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화면을 설계한다. 같은 학부의 이준서 학생은 데이터 통합과 인프라를 담당해 다양한 공공·관측 데이터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안정적으로 흐르도록 시스템의 뼈대를 구축한다.
오토세이퍼의 성장 과정은 수상 실적이 여실히 보여준다. 2023 Microsoft 인공지능 서비스 개발 경진대회 최우수상과 2024 스타트업 밋업 페스타 충남 대학 창업경진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어 2025년에는 충청권 ICT·IS 디지털신기술 아이디어·SW 개발 공모전 대상(충남테크노파크 원장상), 전국 ICT·IS 디지털신기술 아이디어·SW 개발 공모전 대상(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 대상(한국기술교육대학교 총장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한국시뮬레이션학회 논문 발표 경진대회 우수상과 충청권 SCOUT 사업단 충남 학생 창업경진대회 우수상도 받았다.
그리고 올해 7월, 재난안전 분야로 영역을 확장한 트윈세이퍼로 제4회 재난안전데이터 활용 창업경진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시작한 창업동아리가 기술을 검증하고 제품을 발전시킨 성과다. 오토세이퍼는 이와 함께 핵심 기술 관련 특허 2건을 출원했으며, 올해 예비창업패키지 등 3개 창업지원사업에도 선정됐다.
“시물레이션 통해 15분, 30분 뒤 상황 예측”
대상 수상작인 트윈세이퍼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재난 상황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윈세이퍼는 공공 재난안전 데이터를 연계해 기상특보, 하천 수위, 긴급재난문자 등 상황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한다. 이후 정부 매뉴얼과 지침을 기반으로 위험 단계를 판정하고, 디지털트윈 시뮬레이션을 통해 15분, 30분 뒤 상황을 예측한다. 특히 통제 조치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미래 상황을 나란히 비교해 담당자에게 ‘몇 분 안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오토세이퍼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기존 관제 시스템이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면 트윈세이퍼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비교해 의사결정을 돕는다. AI의 역할도 보수적으로 설계했다. 위험 판정 자체는 AI가 아니라 정부의 공식 기준에 따라 이뤄지며, AI는 판정 결과와 근거를 바탕으로 상황 전파와 보고에 활용할 수 있는 브리핑 문장을 생성한다. 각 문장에는 근거를 인용하도록 하고 반복 시험을 통해 검증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현재는 인파와 침수 재난 유형을 구현했으며, 위험 판정 모듈을 교체하면 다른 재난 유형으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다. 더 주목할 부분은 재난이 발생하지 않은 평상시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트윈세이퍼는 가상 시나리오를 적용한 도상훈련(TTX) 시스템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훈련과 실제 대응이 같은 엔진과 화면을 사용하기 때문에 평소 익숙해진 시스템을 실제 재난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훈련 이력은 자동으로 문서화해 증빙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트윈세이퍼는 책상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가 아니다. 오토세이퍼는 기존 인파 관리 시스템을 들고 충청권과 수도권의 지자체 안전관리 부서를 포함한 현장 실무자 45명을 직접 만났다. 현장에서는 축제와 행사장 등에서 인파 관리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확인됐다. 반면 이미 상시 관제 시스템을 구축한 지자체에서는 기존 시스템을 교체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없었다.
팀은 여기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기존 시스템보다 조금 더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시스템이 아예 답하지 못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현장 실무자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은 상황을 관측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해질지, 언제 통제해야 할지, 그리고 그 판단의 근거를 어떻게 남길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오토세이퍼는 이 공백을 디지털트윈으로 채우기로 했다. 결국 트윈세이퍼는 현장의 질문이 만들어낸 제품인 셈이다.
경영학의 ‘고객 검증’과 공학의 ‘기술 구현’이 만나다
오토세이퍼의 경쟁력에는 한국기술교육대의 교육과 연구 환경도 자리하고 있다.
이상화 대표는 학부 경영 수업에서 배운 고객 검증과 가설 검증 방법을 실제 창업 과정에 적용했다. 현장 실무자 45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역시 수업에서 배운 방법을 기반으로 설계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기존 인파 관리 시스템에서 재난 대응 시스템인 트윈세이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아이디어를 실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구현한 것은 컴퓨터공학 전공 팀원들의 역량이었다. 또한 지도교수 연구실에서 축적한 기술적 기반은 핵심 기술을 논문으로 검증하는 데 힘이 됐다. 특히 경영학부 배장원 교수의 지도를 받아 시스템 핵심 기술을 한국시뮬레이션학회 논문으로 검증했다.
여기에 대학의 창업동아리와 창업 지원 제도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창업전담교수의 멘토링을 통해 사업 방향을 구체화했고, 특허 2건 출원과 창업경진대회 준비, 예비창업패키지 등 정부지원사업 연계 과정에서도 학교의 지원을 받았다.
경영과 공학의 결합은 오토세이퍼의 또 다른 강점이다. 같은 현장을 방문해도 각자가 바라보는 것은 달랐다. 관측 담당자는 야간이나 역광에서도 정확한 인원 계수가 가능하도록 카메라의 위치와 화각을 살폈고, 인프라 담당자는 야외에서 전원과 네트워크가 끊겼을 때 데이터를 어떻게 이어갈지를 고민했다. 화면 담당자는 실제 운영자가 어떤 범위의 지도를 봐야 하는지를 살폈고, 대표는 이 시스템이 행사 운영 절차의 어느 단계에서 활용돼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서로 다른 전공과 역할이 하나의 현장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혼자라면 놓쳤을 문제를 발견하고 보완할 수 있었다.
이상화 대표는 “다르게 보는 것이 처음부터 시너지였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팀 전체가 같은 목표를 바라볼 때 비로소 서로 다른 전공이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현장에서 반복해서 들은 질문, “그래서 이 경보를 확인한 뒤 누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나요?”가 팀의 공통 목표가 됐다.
결국 오토세이퍼가 말하는 융합의 의미는 단순히 여러 전공자가 한 팀에 모이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통해 잘못된 가정을 더 빨리 찾아내고 함께 수정하는 과정 자체가 융합의 힘이라는 것.
“연구실에서 출발한 안전 기술, 실제 현장을 넘어 세계로”
오토세이퍼의 다음 무대는 연구실이 아니라 실제 현장이다. 지난 5월 대학 축제에서 오토세이퍼의 첫 현장 실증을 마쳤으며, 오는 9월에는 천안 K-컬처박람회에서 실제 야외 공공행사를 대상으로 실시간 관제 실증을 진행할 예정이다. 같은 기간 안전산업박람회 부스에서도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트윈세이퍼는 이번 대상 수상을 발판으로 범정부 공공데이터 활용 창업경진대회에도 도전한다. 우선 개방 데이터와 사전 시나리오만으로 운영할 수 있는 도상훈련 모드를 기관에 도입해 신뢰를 확보하고, 이후 실시간 대응 모드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인파와 침수를 넘어 다양한 재난 유형으로 적용 범위도 넓혀갈 예정이다.
오토세이퍼가 그리고 있는 최종 목표는 단순히 하나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사전 검토와 실시간 관제, 사후 기록이 하나로 이어지고, 안전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에 판단의 근거가 함께 놓이는 새로운 안전관리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연구실에서 시작한 학생들의 작은 질문은 이제 실제 재난안전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오토세이퍼가 꿈꾸는 다음 장면은 분명하다.
사고가 발생한 뒤 CCTV를 되감아 흔적을 확인하는 안전관리를 넘어,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디지털트윈으로 미래를 그려보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안전관리. 오토세이퍼는 그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