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공대를 졸업하고 S그룹에 입사한 K씨는 올해 초 신입사원 교육을 받다 망신을 당했다. 전자제품의 기판 회로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그는 "대학 다닐 때 제대로 배우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K씨가 나온 대학의 전자공학계열 과목 중 회로설계 분야는 전체 학생의 27% 밖에 이수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이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원 류지성 박사는 "공대생들이 학점을 쉽게 딸 수 있는 과목에 몰리면서 대학에서 꼭 배워야 할 과목을 이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고교생 열 명 중 여덟 명 이상은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에 진학한다. 세계 최고 수준(2007년 82.8%)이다. 반면 교육의 질은 꼴찌 수준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15일 발표한 2008년도 세계 경쟁력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대학 교육의 경제·사회 요구 부합도'에서 55개 조사 대상국 중 53위에 그쳤다. 이 순위는 IMD 측이 지난해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CEO) 600명을 대상으로 ‘대학 교육이 산업계가 원하는 내용을 얼마나 다루고 있는지' 설문조사한 결과다. 한국의 교육분야 경쟁력도 지난해 29위에서 올해 35위로 뒷걸음질했다.
◇시대 흐름 못 따라가는 대학 교육=기업체는 대졸자를 현장에 투입하는 데 큰 애로를 겪고 있다. 대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LG화학 서성환 채용팀장은 "업무별로 최소한 1년 이상 재교육을 해야 써먹을 수 있다"며 "특히 이공계 출신들의 실력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의 윤우영(고려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정책기획위원장은 "대학 교육이 기술 발전이나 시대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산업 현장의 수요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교수들이 연구실적에만 신경 쓰기 때문에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필요한 실무지식을 가르치는 데는 소홀한 것도 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곧장 써먹을 수 없는 대졸자를 뽑은 기업체도 골머리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을 실무에 투입하기까지 평균 20.3개월이 걸린다. 1인당 연간 재교육비는 대기업은 4000여만원, 중소기업은 3000만원 정도 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티맥스소프트의 호경석 인사담당 차장은 "전산 담당 사원을 뽑아놓고 1~2년 동안 교육만 시키는 업체들도 있다"며 "대학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 맞춤형 인재 길러야=인하대 조석연 기획처장은 "기업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기업체 인사담당자의 의견을 듣고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충남 천안의 한국기술교육대는 2006년부터 대기업과 공동으로 ‘첨단기술교육센터'를 설립해 신입사원을 재교육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하반기 실시 예정인 ‘산업계 대학평가'도 주목받고 있다. 분야는 철강·조선·반도체·자동차·전자·금융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이경희 인력수급통계과장은 "기업 수요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도록 평가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강홍준·임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