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단체, 전문가 육성하고 정부는 이를 적극 지원해야"
◇ 한국기술교육대 이선 교수 |
Ⅰ. 머리말
새 정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노동정책으로서 드러나는 정책은 노사관계에서의 법치주의의 확립과 임금과 고용의 유연화 등이다. 민간투자를 유인해서 경제를 살려간다는 새 정부의 정책방향에 상응하는 노동정책이라고 이해된다.
새 정부의 노동분야 국정과제에는 상생의 노사협력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하여나간다는 노사관계대책이나 취약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여 나간다는 근로복지정책도 선언적 수준에서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일부 노동행정을 지방으로 위임하는 방안 등 노동행정의 개혁을 위한 내부적인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사회통합과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부문은 대통령자문위원회로 설립될 미래기획위원회에서 별도로 연구할 계획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사회통합을 위한 노사관계의 전략이나 고용, 인력개발에 대하여 과거와 구분해 볼 수 있는 새 정부의 정책적 비전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여에 불과하였다는 점을 고려해도 아쉬운 점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새 정부의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노사관계나 인력개발, 미시적 고용정책의 중요성에 대해서 길게 되풀이해서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적자원의 비교우위를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나갈 수 있느냐가 선진화를 가름하는 요건이다. 현재로 보면 노사관계와 인력개발시스템의 취약성이 오히려 우리나라의 선진화의 길목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부문의 혁신은 시급하고도 절박한 과제일 것이다.
그동안 각계에서 노동문제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여 왔다. 각계의 의견을 재정리하고 범정부적으로 조율해서 노동부문의 혁신을 위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여 나가야 한다. 노사관계, 고용, 인력개발 부문의 순으로 노동부문의 혁신을 위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Ⅱ. 사회적 대화를 위한 전략적 접근
노사는 기업단위에서는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서 협력하고 사회적 단위에서는 인력개발, 고용과 복지부문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고 정책개발에 참여하는 사회적 파트너이다. 정보·지식화가 진전될수록 사회적 파트너인 노사가 참여하는 네트워크의 역할은 커진다. 노사관계의 선진화는 이러한 네트워크를 토대로 해서 기업과 나아가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생산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사관계를 통해서 국가경쟁력을 높여온 일본이나 과거의 서독이 좋은 예일 것이다.
인적자원을 토대로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 나가야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노사파트너십을 제도화 하는 노사관계의 선진화가 어느 나라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다. 새 정부에서는 이미 제시되고 있는 노사관계에서의 법치주의의 확립이라는 정책지표와 병행해서 노사파트너십을 지향하는 노사관계정책지표를 설정해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각급 수준에서의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하는 것은 노사파트너십을 제도화하기 위한 핵심적인 과제이다. 사회적 대화는 일부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와 지식·정보화가 진전되며 대다수의 서구 선진국은 집권정당이 보수당이냐 사회당이냐를 불문하고 노사가 참여한 인력과 고용, 사회정책의 거버넌스를 확충하는 한편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사회복지제도의 재정적 부담을 더는 구조조정을 추진하여 왔다. 과거에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이데올로기였던 네오·코포라티즘(neo-corporatism)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컴페티티브·코포라티즘(competitive corporatism)으로 바뀐 것이다.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비롯하여 노사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회적 대화를 원활하게 이끌어 가기는 쉽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국민정부 이래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리 우호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가 본질적으로 시행착오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과제는 아니다. 과거에 사회적 대화에서 시행착오가 많았던 주된 원인은 사회적 대화에 대한 접근이 미흡한 데에 있었다. 예를 들면 노사조직 구조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여러 경제사회정책이나 노동법규범을 아우르는 패키지에 대하여 사회협약을 시도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해를 앞세운 과욕이었다.
노사의 이해가 첨예한 노동법규범의 정비를 사회합의의 중앙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도 전략적인 오류였다고 본다. 국민경제 수준의 대화채널을 사회협약을 지향하는 채널로 제도화한 것도 지나치게 경직적인 접근이었다.
사회적 대화가 소기의 결실을 거두려면 고도의 전략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노사정위원회의 경험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정치적인 부담에 의해 노사 일방이 대화채널에의 참여를 기피할 수 있다. 사회적 협의기구로서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국민경제수준의 대화채널을 재구축하여야 한다.
프랑스나 네덜란드에서와 같이 사회적 위상을 가진 고도의 전문기구로 중앙단위 협의채널을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노사정이 생산적인 협의가 가능한 어젠다를 중앙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쟁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원칙적으로 노동부나 관련부처에서 주도하여 추진하여야 한다. 쟁점이나 지역, 산업단위 등으로 대화테이블을 다양화하는 것도 사회적 협의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전략적인 접근이다.
Ⅲ. 고용정책과 복지정책, 지방화정책의 연계추진
경제성장이 여전히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중추적인 과제이지만, 1990년대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시대가 끝나고 경제성장의 고용흡수력도 낮아짐에 따라 취약계층을 취업으로 이끄는 노동시장프로그램의 의의도 커져 왔다. 이제 미시적 고용정책은 고용을 높여감으로서 경제성장을 이끄는 유력한 정책이기도 하다. 한 때는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고용형태를 다양화하는 미시적 고용정책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고용을 높이고 고용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또한 수요자 중심의 복지정책, 사회투자의 생산적 복지정책의 중추적인 과제로 자리 잡아왔다. 고용정책과 복지정책을 연계하여 추진하는 것이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독일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이 복지정책과 고용정책을 관장하는 중앙부처를 두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국과 일본도 이런 방향으로 중앙정부의 조직을 재구축한바 있다.
경제정책과 고용정책, 복지정책을 연계하여 추진하는 것은 정책의 효과성을 높여가기 위한 핵심적인 과제이다. 경제, 노동, 복지정책을 연계하는 방안으로는 먼저 지역단위에 one-stop서비스를 설치하여 관련정책의 연계를 높이는 미국식의 유형을 예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같은 컨소시엄 방식의 접근으로 정책연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 지방정부조직에서 관련정책을 연계하여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전국적인 고용안정망을 중심으로 고용서비스를 제공하여온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용지원에이전시를 중심으로 하여 관련정책을 연계하는 독일의 방식이 지향하기에 가장 용이한 모델이 되리라 본다.
즉 현재 노동부의 고용지원망을 중심으로 하여 거버넌스를 재정비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고용관련 산하단체를 통합하여 일원화하는 방안이나 민간조직으로 재구축하는 방안 등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경제사회부처도 노동부와 함께 고용지원망의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일원이 된다. 노사단체가 주체의 일원으로서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것도 바람직한 길이다. 참여의 폭을 단계적으로 높여서 독일에서와 같이 노사정이 운영하는 에이전시로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고용과 복지, 인력개발 정책에 대한 지방정부의 역할을 높여가는 것은 지방화를 위한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또한 고용과 복지, 인력개발 정책의 지방화는 관련 경제사회정책과의 연계적인 추진을 위한 요건이기도 하다. 중앙정부의 정책을 효율적으로 지역의 정책에 연계하고 지방화를 촉진하여 나가는 것이 과제이다. 위에서 제시한 대로 고용지원에이전시를 혁신하며 거버넌스에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방안도 유력한 대안의 하나이다. 고용지원에이전시의 지역조직의 운영에 지역정부와 지역단위 노사단체가 참여하는 독일의 사례가 귀감이 된다.
Ⅳ. 산학연계를 위한 제도화와 인프라 구축
고등교육의 양적인 확충이 우려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대학입학정원을 통제하는 식의 인위적인 규제정책은 또 다른 부작용을 유발할 것이다. 입학시험제도를 바꾸는 식의 교육정책적인 대응만으로 풀어가기도 어렵다. 교육정책과 노동시장정책을 비롯하여 여러 경제사회정책이 연계하여 대학교육의 대중화가가 우리나라의 인력자원의 경쟁력을 높여가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인력개발시스템을 정립하여나가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대학교육의 양적인 확충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학교육이 산업계의 수요와 괴리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산업계의 수요에 부응한다면 고등교육의 양적인 확충이 크게 문제가 될 수 없다. 고등교육의 산학연계를 높여가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교육훈련의 산학연계는 또한 학교교육과 더불어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또 하나의 과제인 계속교육을 확충하기 위한 요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학교교육은 양적으로 확충되어 왔으나 산업계에 진입한 이후의 계속교육에의 참여는 미흡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역단위 산업클러스터를 육성하고 대학의 계속교육 참여를 유도하며 공공 직업능력개발기관을 계속교육기관으로 구조조정 하는 등 산학연계를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여 왔다. 산학연계를 위한 일련의 정책은 다각적으로 확충하고 강화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산학연계 정책으로 우리나라의 인문위주의 교육이 크게 바뀔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는다. 산학연계를 제도화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먼저, 교육을 이끄는 지표로서 자격의 위상이 학위와 상응할 수 있도록 자격제도를 혁신한다. 자격은 직업능력의 지표이므로 자격이 이끄는 교육은 직업능력을 개발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자격은 대학교육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유력한 척도가 되어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의 서열화를 완화시키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고등교육의 대중화에 따라 고등교육은 직업교육의 성격이 강하다. 순수학문을 위한 학업능력만을 지표로 하여 교육프로그램이나 학생을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교육의 현실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대학 입시를 위한 교육을 이끄는 주된 요인이다. 일과 자격과 교육·훈련을 연계하는 것은 또한 계속교육을 유도하는 유력한 방안이다. 국가자격체계를 정비하고 국가자격제도를 기획하고 정책을 조정하는 정부와 관련 노사를 지원하는 국가자격전담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음으로 산업계와 노동계가 인력개발을 이끄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섹터․카운슬(sector-counsel)을 제도화하여 나간다. 우리나라는 산업계가 주도하는 업종단위의 협의채널(SHRDC)을 일부 업종에서 운영하고 있으나 기능은 대단히 미흡한 실정이다. 섹터․카운슬의 제도화는 자격제도의 혁신과 연계하여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섹터․카운슬이 자격제도의 운영의 주체가 되고 직무능력의 표준(NSS)을 개발하는 데에 앞장섬으로써 제도화가 촉진될 수 있다. 섹터․카운슬은 산업계가 주도하되 노동계가 참여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노사가 인력개발과 고용정책, 복지정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노사관계정책의 선진화를 위한 관건이 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노사 참여적 거버넌스의 제도화는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노사와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어젠다이다. 사회적 대화의 중앙테이블에 올려놓기에 적합한 어젠다라고 할 수 있다. 섹터․카운슬은 인력개발정책과 노동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관례이다. 노동부를 주관부처로 하여 섹터․카운슬의 틀을 다시 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Ⅴ. 맺음말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인력개발과 고용정책, 복지정책의 거버넌스의 일원이 되는 노사단체는 고도의 전문기관이 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도 또한 정책개발 전문능력을 확충하여 정책개발 전문기관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정부 구조조정의 핵심적인 과제일 것이다.
각급 노사단체가 종사하는 많은 스태프는 각 방면의 전문가로 육성되어야 한다. 각급 노사단체에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점이 사회적 대화를 어렵게 하고 노사참여의 결실을 미흡하게 하는 요인이다. 지역단위, 업종단위 등 노사단체의 전문가를 육성하기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추진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