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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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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A 해외직업훈련 체험연수 소감문
전기전자통신공학부 빈재만
등록일 : 2012-06-06
조회수 : 6,507
한국기술교육대학교는 최근 글로벌역량이 매년 강화되고 있습니다. 입학홍보팀에서는 해외인턴십 및 교환학생, 단기 프로그램 등에 참여한 학생들의 소감문을 연재해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당부드립니다.


파견국가 : 캄보디아
파견기간 : 2011.07.11 ~ 2011.07.21
학      부 : 전기전자통신공학부
성      명 : 빈재만
학      년 : 4학년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 언제나 행복하세요라는 캄보디아 말 )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학부생으로 한국국제협력단 (KOICA) 와 연계된 수업인 국제개발협력의 이해를 들었던 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 국제개발협력의 이해는 공적개발원조 (ODA) 를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에게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 수업인데 , 수업을 종강하고 ODA 연수라는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캄보디아를 방문할 수 있었다 . 7 11 일부터 21 일까지 , 9 11 일의 짧은 시간이라면 짧겠지만 그 시간 속에서 체득한 경험은 결코 짧지만은 않다 . 이제 내가 보고 듣고 기록한 얘기를 나누려고 한다 .

 

 

2011.07.11. 1 일째 , 배움을 향한 첫 발걸음

주요 방문 장소 : 인천공항 , 프놈펜공항 , 나가월드호텔

 

오늘은 인천공항을 통해 캄보디아로 가는 날이다 . 3,000km 라는 거리를 날아가 수업에서 배운 ODA 를 캄보디아 현장에서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 떠나기 전 OT 에서 공지했던 내용에 따라 캐리어 속에 넣은 짐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한다 . 약속한 라운지에서 이번 연수를 함께 할 이해균 교수님 , 김한조 선생님과 학교 선후배들을 만났다 . 간단한 주의사항을 다시 숙지하고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

 

3,000km 가 떨어진 거리 , 5 시간을 비행한 뒤에야 우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했다 . 비행기에 내려 프놈펜 국제공항에 발을 딛자 우리나라와는 다른 공기가 우릴 맞이한다 . 이곳이 캄보디아라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는 첫 경험이다 . 현지 가이드를 만나 우리 버스로 이동한다 . 차 안은 바깥공기와는 다르게 에어컨을 통해 차가운 공기가 나온다 . 숙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간단한 일정을 브리핑 받았다 . 이제 진짜 시작이다 .

프놈펜 현지 숙소인 나가월드 호텔에 도착했다 . 캄보디아의 첫 인상은 프놈펜 공항과 나가월드 호텔이었다 . 캄보디아가 개발도상국인줄로만 알았던 내게 나가월드 호텔은 충격이었다 . 호텔 앞에는 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했고 , 로비를 들어서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흐르고 1 층에는 카지노가 위치해있었다 . 직원들은 깔끔한 정복을 입고 근무를 하고 있다 . 내가 캄보디아를 너무 가난한 나라로 생각한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 로비에서 각자 방을 배정받고 방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 오고 가는 이동시간 때문인지 짐을 풀고 곧 잠이 들어버렸다 .

 

이 여정의 끝에 어떤 배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내가 가지는 태도에 따라 이번 연수를 통해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는 믿음에 적극적으로 연수에 참여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 이 다짐이 다짐만으로 끝나지 않게 항상 되새기자 .

 

 

2011.07.12. 2 일째 , 캄보디아에서 한국을 만나다 .

주요 방문 장소 : KOICA 사무소 ( 프놈펜 ), 직업훈련대학 (NPIC), 한마음한몸운동본부 ( 반띠에이 )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 오늘은 KOICA 사무소 , 직업훈련대학 , 한마음한몸운동본부 ( 반띠에이 ) 를 방문하는 날이다 . KOICA 는 수업시간에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 중 무상원조를 담당하는 기관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실제 현지 사무소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KOICA 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 KOICA 정문을 지나자 한국인 단원들께서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 , 캄보디아에서 수행하고 있는 KOICA 무상원조 사업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들었다 .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캄보디아에서의 무상원조 사업이 깔끔히 정리되었는데 , 이명박 대통령의 신아시아 외교정책으로 캄보디아는 많은 원조를 받고 있었다 . 1991 년 물자지원을 시작으로 20 여개의 프로젝트 사업과 전체 지원규모는 약 6,500 만 불에 이른다고 한다 . 인상 깊었던 점은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많은 학살이 자행되어 사회적 인프라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 특히 , 농업이 국가 주력 사업이기에 농업이 캄보디아에서는 중요했다 . KOICA 에서도 이 점을 인지하여 관개수로 건설사업으로 인한 농작물의 3 모작으로 농가들의 소득증대를 이끌었다 . 이외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국립소아병원 의료지원 , 시엠립에 위치한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우회도로사업 , 캄보디아에서 실제 소득으로 연결되는 직훈 교육 등 KOICA 는 캄보디아에서 전 분야를 아우르는 원조사업을 수행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 무상원조를 하는데 있어서 공여국은 무작정 많은 금액을 원조하기보다는 수원국에서 필요로 하는 사업에 대해서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점이 생각났다 . 브리핑을 마치고 인사를 나눈 후 , 우리는 직업훈련대학 (NPIC) 로 향했다 . 한국기술교육대학교가 노동부에서 직훈 교사 양성을 위해 실사구시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기술사관학교 형식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 . 직업훈련대학에서 총장님이 우릴 직접 맞아주셨고 프레젠테이션을 해주셨다 . 총장님은 현재 캄보디아에 필요한 건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직훈 교육이라 하셨는데 ,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가난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어야하며 이를 위한 방법으로 직업 훈련이 주목받고 있다 . 실제로 직업훈련대학에서는 이런 수요에 맞춰 직업훈련교육을 공급하고 있었다 . 기억에 남는 부분은 NPIC KOICA 한국인 단원이 한국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 실제로 캄보디아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한국에 가서 일을 하는 게 선망의 대상이라 했는데 마치 우리나라가 한국전쟁 이후에 아메리카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향했던 것처럼 캄보디아 젊은이들도 코리아드림을 꿈꾸며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어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한다고 한다 . 한국에서 본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이루기 위해 한국에서 땀 흘리고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모습은 낯선 모습이 아니라 반세기 전에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께서 캄보디아 학생들은 정치적으로 예체능 교육을 막았기 때문에 상상력과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해주셨다 . 단지 ,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이 나라의 어린이들은 받아야 할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UN MDGs 에서도 강조했듯이 어떤 나라에서 태어나더라도 보편적인 초등교육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NPIC 에서 일정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방문했다 . 한마음 한몸 운동본부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직업기술을 훈련하는 학교였다 . 반티에이라고도 불리는데 특이했던 점은 종교적 성격의 학교이지만 종교를 선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 이 곳에 입학한 학생들은 목공예 , 재봉 , 기계 , 전자 , 농업 등의 교육을 받고 졸업을 시키는데 5 년 동안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관리해준다는 점이 특이했다 . 그리고 이 기간을 거쳐 사회에 진출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재학생들이 직접 찾아가 얘기를 나눈다고 했다 . 실제로 학교를 견학하는 와중에 만난 학생들은 몸이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었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미소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 사회적 차원에서도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이들을 격리하고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음지가 아닌 양지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그들이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핸디캡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

 

오늘 본격적인 첫 일정을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KOICA, NPIC,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각기 주관 단체와 성격이 다르지만 이들의 공통된 목적은 같다고 생각한다 .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는 것 .

나는 지금 누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가 ?

 

2011.07.13. 3 일째 , 현재 그리고 미래의 캄보디아

주요 방문 장소 : 왕립소아병원 , 측량기준점 사업 , 미국평화봉사단 (US Peace Corps), 개발 NGO 코피온사무소

 

오늘의 일정은 KOICA 무상원조 사업인 왕립소아병원 , 측량기준점 사업을 돌아보고 미국의 무상원조 기관인 US Peace Corps 평화봉사단을 방문하고 , 개발 NGO 단체인 코피온 사무소를 방문하는 것이다 . 첫 번째로 KOICA 무상원조 사업인 왕립소아병원을 방문했는데 캄보디아는 입헌군주제 국가이기에 왕립이라는 말이 우리나라 국립의 개념으로 앞에 붙는다 . 왕립소아병원을 들어서자 소아병원이기 때문에 어린애들이 많이 있었다 . 병원장님과 직원분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해주셨는데 캄보디아에서 의료사업이 현재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해주셨다 . 킬링필드 이전에는 의료시스템이 구축이 되어있었지만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학살이 자행되고 그나마 살아있던 사람들도 지방으로 소개되어 1980 년대에는 의사가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다고 말씀해주셨다 . 때문에 의료시스템이 매우 빈약하며 대표적인 3 대 질병 ( 열대성 전염병 , 설사 , 폐병 ) 으로 많은 어린이들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 이에 캄보디아 정부는 3 대 질병을 우선 퇴치과제로 선정하여 이를 퇴치하는데 역량을 집중해 현재는 많은 영유아들을 질병의 손아귀에서 구해내고 있었다 . 기초적인 의료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에 R&D 등 질적 의료에 역량을 집중하기보다는 다수가 보편적인 기초의료를 보장받을 수 있는 양적의료에 집중하고 있다하셨다 . 대다수의 선진국에서 의대생을 파견하여 의료봉사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은 하였지만 의료분야라는 것이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쉽게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 이를 엄격히 통제하여 양국 정부가 협정을 맺은 경우에만 의료단을 지원받는다고 한다 . 수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의료산업은 중요한 산업이라 생각된다 . 그중에서도 특히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선진국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편적인 의료복지를 , 혜택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 영유아들이 건강히 자라야 개발도상국의 일꾼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라 믿는다 . 캄보디아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에게 보다 많은 의료시스템이 적용되고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국립소아병원에 위치한 KOICA Friendship 병동을 살펴봤다 .

 

이후 미국 정부 원조기관인 피스코를 방문했다 . 피스코는 John.F.Kennedy 대통령이 1961 년에 뉴프런티어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하였고 현재는 139 개국에 20,000 여명의 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다 . 프로그램은 자체적으로 수행하기보다는 현지 정부가 피스코에 요청을 하면 거기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해주는데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영어교육과 문화 활동 등이 있다 . 특이한 점은 현지인들과 함께 숙식하면서 매달 활동비의 일부를 집주인에게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 한국에서 주미대사였던 스티븐슨 대사 역시 평화봉사단 출신으로 영어교사로 영어를 가르친 경력이 있다 . 미국 평화봉사단 출신이 훗날 활동했던 지역으로 외교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케이스이다 . 단지 2~3 년 동안 개발도상국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현지 전문가가 되는 기반을 만든다는 점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 우리나라에서 운영하고 있는 KOICA 봉사단원들 중에서도 스티븐슨 전 대사 같은 케이스가 나오리라 생각했다 . 미국 평화봉사단은 정치적인 이해관계 없이 그 나라를 원조해주고 있다는 말을 해주셨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 인력 배분부터 재정 분야까지 국가가 개입을 하게 되면 어떻게든 정책적 의사결정이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 물론 개개인이 정치적인 생각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하진 않겠지만 큰 틀에서는 그렇게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 국가의 정치적인 견해가 어떻게 전개되든 분명한 사실은 미국 평화봉사단도 KOICA 해외봉사단도 개발도상국에 있는 주민들을 도와주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다 . 그들의 젊음을 담보로 한 용기와 기회가 부럽게 느껴진다 . 나도 젊음을 담보로 이들처럼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

 

미국 평화봉사단 방문을 마치고 마지막 일정인 코피온 사무소를 향했다 . 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는데 열대기후인 캄보디아에서 스콜이라는 국지성 호우라고 불리는 비로 해가 쨍쨍하게 떠있는데도 비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 우산을 썼지만 흠뻑 젖은 채로 코피온 현지 사무소에 도착했고 사무소장님이 우릴 맞아주셨다 . 코피온에 대한 간략한 프레젠테이션을 들었는데 개발 NGO 이기에 현지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었다 . 물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 우물을 파주는 사업은 현지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현지 스텝들과 함께 봉사활동 했는데 현지스텝들이 한국말을 의외로 잘했다 . 이들 역시 코리아드림을 꿈꾸며 한국에서 취업이 꿈이라고 했다 .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누군가에겐 이토록 꿈을 꾸게 만드는 장소라는 사실이 , 그 장소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느껴졌다 .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장소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 내가 우리나라 ,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안정된 사회 속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

 

2011.07.14. 4 일째 , 캄보디아를 생각하다 .

주요 방문 장소 : 왕립농업대학 , 뚤슬랭박물관 , 왕궁 , 놀이공원

 

오늘은 KOICA 이원배 시니어 봉사단원께서 활동하고 있는 왕립농업대학을 방문하고 , 킬링필드에 관한 박물관인 뚤슬랭박물관을 보고 , 왕궁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 호텔에서 조식을 간단하게 먹고 난 후 왕립농업대학을 향했다 . 왕립농업대학에 도착하니 KOICA 시니어 봉사단원으로 활동하고 계신 이원배 박사님이 정문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 인자한 미소를 가지신 이원배 박사님은 한국에서 활동하신 후 퇴임을 하시고 캄보디아 왕립농업대학에서 대학생들에게 수의학을 가르치고 계셨다 . 이원배 박사님이 왕립농업대학 캠퍼스 중에 수의학 건물이 있는 동을 구경시켜주셨고 , 한국의 무상원조로 인해 학생들이 공부하고 실습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 만들어졌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 투어를 마치고 현지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 교복을 입고 있고 있었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똑같이 한창 멋을 내고 예쁜 모습으로 단정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밝게 웃고 있었다 . 비록 대화는 원활하지 못했지만 대학생으로 배우고 있다는 점이다 . 뚤슬랭 박물관을 살펴보면서 밝게 지내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마음 이면에 있는 상처를 볼 수 있었다 . 왕궁을 통해서는 입헌군주제라는 나라에 왕이 가지는 위치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2011.07.15. 5 일째 , 다양한 도움의 손길

주요 방문 장소 : 고엘 , RDI

 

오늘은 사회적기업인 고엘을 방문하고 적정기술을 활용한 RDI(: Resource Development International) 를 방문하는 날이다 . 첫 번째 방문 장소인 고엘을 방문했는데 한준민 대표님이 나와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 곧 우리는 한 대표님의 안내에 따라 어느 집을 들어섰는데 그곳은 집이면서 일터였다 . 캄보디아는 공장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내수공업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하셨다 . 고엘은 천연 재료를 가지고 천연 의류 및 잡화를 만들어 이를 공정무역상품으로 판매하는 일을 한다 . NGO 비영리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수익을 내는 일을 하고 있지만 이 수익을 배분하는 것에 있어서는 일반 기업과 고엘은 다르다 . 일반 기업은 수익의 대부분을 경영진이나 투자자들에게 돌아가지만 고엘은 이익을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배분한다 . 공정무역 (Fair Trade) 라는 말 자체가 네덜란드에서 시작했는데 제품을 만드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관여한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이익을 내는 구조라고 한다 . 이는 자본주의 , 시장경제 논리에 위배되는 말이기도 했는데 이들의 논리는 최소의 재원으로 최대의 수익을 내는 것 . 즉 돈이 목적이고 사람은 수단인 반면 , 공정무역은 사람이 목적이고 돈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 평소에 경제학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 공정무역 상품에 대해서도 알고 있던 나로서는 충격적이었다 . 나 역시도 사람을 단지 수익률을 내기 위한 도구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는 말을 남긴 상도 임상옥의 말이 떠올랐다 . 한준민 대표는 이어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고엘이라는 기업 내부에서는 급격한 성장을 견제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 기업이 급격히 성장해버리면 창업을 하면서 가졌던 사회적 공헌이라는 뜻이 희석될 수도 있고 재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 기업이 이익을 목표로 하지만 성장을 견제한다는 말도 나에겐 역설로 들렸다 . 아니 , 일반적인 의미의 기업이 가지는 목표에는 역설적이겠지만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사회적기업인 고엘이라는 사실이 또렷이 각인되고 있었다 . 이어 고엘이 더 이상 커나가기 보다는 고엘과 같은 사회적 기업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게 바램이라고 하셨다 . 뚜렷한 사회적 공헌에 근거한 경영을 하고 계시다는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다 . 이곳 고엘에는 자원봉사 대학생들도 3 명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방학을 이용해 봉사활동을 하러 온 4 학년 취업준비생도 있었다 . 한창 스펙을 쌓아 취업준비를 해야 되는 시기에 이곳을 방문한 이유를 말해주었는데 대학생의 마지막 방학을 남들처럼 토익 준비한다고 학원에 가서 있는 건 뭔가 보람되지 못한 것 같아서 이곳으로 찾아오게 됐다는 말을 했다 . 보람을 찾아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말이 뭉클하게 느껴졌다 . 이후 학생들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 대학의 ODA 체험연수를 상당히 부러워했다 . 나 역시 그들이 지금 자신의 젊음을 담보삼아 열정이 이끄는 데로 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 얘기를 마친 후 실제 잡화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는데 실을 이용해서 한땀 한땀 사람이 직접 손으로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다 . 비록 서투르고 어색했지만 핸드폰 고리 인형 하나를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간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 공장으로 찍어 내는게 아니기에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이 직접 손으로 만드는 핸드메이킹 상품이기에 또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 실제로 고엘은 천연의류 및 잡화를 공정무역 상품으로 선진국에 수출을 하는데 내수를 이미 앞질렀다고 한다 . 가격은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제품보다 약간 비싸지만 내가 이 가격을 지불한 만큼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나눠주고 사람이 직접 노동해서 만든 상품이란걸 감안하면 그리 비싸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고엘에서 작업을 모두 마친 후 우리는 다음 방문 장소인 RDI 로 이동했다 . 이동하는 차안에서 KOICA 현지 직원께서 RDI 에 대해서 간략히 브리핑을 해주셨는데 RDI Resource Development International 의 약자로 적정기술을 활용해 수질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 비가 많이 내리고 강물이 많은 캄보디아지만 진짜 캄보디아에서는 사람들을 3 분류로 구분한다고 한다 . 집에서 물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 , 일정거리 안에서 물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 , 이외의 나머지 사람들 . 그만큼 캄보디아에서는 물이 귀한 나라였다 . RDI 에서는 깨끗한 수질이용이 어려운 지역민들을 위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10 달러의 정수기를 지역에 보급하는 일을 중개하고 있었다 . 직접 보급하지 않고 지역전문가들을 양성한 후 지역에 파견하여 해당 지역의 수질관련 전문가가 되어 정수기를 판매하고 관리한다고 한다 . 적정기술은 우리 대학에서도 논의가 있고 프로젝트도 있는 분야였지만 적정기술을 이용하여 지역기반사업을 한다는 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 브리핑을 하는 사이 우리는 RDI 프놈펜 사무소에 도착했고 project manager 를 맡고 계신 John Burnette 선생님이 우리를 방겨주셨다 . 훤칠한 키에 연신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RDI 공장을 가이드 해주셨다 . 정수기라고 해서 한국에서의 정수기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 전기로 정수를 하는 것이 아니고 세라믹 점토를 이용해 통 안에 넣고 이를 이용해 정수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 1 시간에 약 2 리터 정도의 물이 정수되게 고안되었고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교육도 실시하고 주요 강물에 대해서 수질조사도 함께 병행하고 있었다 . 이외에도 RDI 에서는 캄보디아에서 기후에 맞는 작물을 기르고 있었는데 일반 나무 같이 느껴졌지만 비타민이 가득 들어있고 식용으로 먹어도 되는 나무라고 했다 . 투어를 마치고 뜻 깊은 일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으로 연수단 내에서 회의를 하여 십시일반 돈을 모아 100 불을 RDI 에 기부했다 . 100 불이라는 금액이 한국에서는 큰 금액이 아닐지라도 현지인들에게 정수기 10 대를 선물했다는 마음에 , 그들이 정수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 원조에 있어서 꼭 high technology 가 아니더라도 basic technology 를 가지고도 현지인들에게 실제 도움을 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 원조에 있어서 우리의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 그들의 눈높이에서 원조가 수행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상상 그 이상으로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가지고 , 기술을 가지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있었다 . 우리나라도 반세기전에 국제사회가 내민 구호의 손길을 받은 경험이 있다 . 그 도움의 손길로 인해 사회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잘 자라난 우리 세대가 이제는 국제사회가 준 도움의 손길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2011.07.16. 6 일째 , 진짜 캄보디아를 만난 날

주요 방문 장소 : 캄퐁참 크로츠마군 농촌 개발사업지 , 홈스테이

 

오늘은 캄보디아 일정 중 실제로 현지인들과 잠시나마 어울리는 시간이다 . 프놈펜에서 떨어진 캄퐁참 마을로 이동해 크로츠마군 농촌 개발사업지를 살펴보고 KOICA 김광욱 단원이 계신 마을로 이동해 봉사활동을 하고 홈스테이를 하는 일정이다 .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와중에 김광욱 단원께서 간단한 브리핑을 해주셨다 . 첫째 날은 현지 KOICA 사업으로 만든 공부방을 청소하고 페인트칠을 하는 일을 하고 , MIT 에서 사탕수수와 카사바라는 식물을 이용해 적정기술로 재생연료인 숯을 만드는 과정이 있는데 이를 참여하고 밤에 현지인들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일정이다 . 그들은 일상이지만 우리는 단지 잠시 머물러 간다는 생각에 피해를 주면 안된다 생각했고 차를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 연수단끼리 얘기를 하고 주의사항에 대해 숙지를 했다 .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농지가 나왔는데 KOICA 사업의 일환으로 농촌개발사업을 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 농업이 주력인 캄보디아라는 말이 실제로 와 닿았고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 미래에는 식량에 안보라는 말이 붙어 식량안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기에 캄보디아와 좋은 파트너쉽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할 것이다 . 농촌개발사업을 살펴보고 우리는 캄퐁창 마을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부터는 버스로 이동이 불가능해 경우기 같은 차량으로 옮겨 타서 이동했다 . 이동하는 동안에 본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웠다 . 우거진 나무 숲 사이로 작게 난 길 하나를 타고 이동했는데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경치구경에 홀딱 빠져있는 사이에 어느 새 현지 마을에 도착했다 . 마을에 도착하니 눈망울이 커다란 어린아이들이 달려와서 맞아 주고 현지마을 이장님 , 경비대장님 , 현지스텝들이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 KOICA 가 지원해준 공부방에서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 곧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조를 나눠 재생 숯을 만드는 일부터 참여했다 . 사탕수수를 드렁통 안에 넣고 불완전 연소시켜 이를 다시 꺼내 까맣게 탄 것들만 선별하는 작업 , 카사바를 으깨고 일정량의 팔팔 끓는 물에 넣고 휘저어 어느 정도 끈적끈적한 상태가 되면 까맣게 탄 사탕수수를 넣고 함께 뒤섞는 과정 , 마지막으로 숯 모양의 틀에 넣고 이를 찍어내는 과정으로 참여했다 . 내리쬐는 햇빛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 이상하게도 일을 하는 과정이 하나하나 즐겁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 현지 주민들도 우리와 함께 일을 하셨고 너무나 아름다운 큰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도 옆에 다가와 장난을 쳤다 . 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이 너무 좋고 행복했다 . 부여된 일을 다 하고 나니 어느 새 해가 눅눅히 지기 시작했고 사전에 조를 만든 사람들끼리 홈스테이 집으로 이동했다 . 홈스테이 집으로 도착하니 부끄럼을 타는 여자애와 어머니 , 할머니가 우릴 맞이해 주셨다 . 저녁 식사를 차려주셨는데 너무 맛있었다 . 고기반찬과 옥수수 , 파인애플 , 현지라면을 차려주셨는데 나중에 단원님께 들은 얘기지만 축제 때 먹는 음식이라고 하셨다 .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고 이 순간 내가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저녁식사를 마친 후 씻고 아이들과 함께 준비해간 작은 발전기를 함께 조립했다 . 밝은 곳에서 테스트를 해봤을 때엔 그렇게 밝지 않게 느껴졌는데 불빛이 없는 곳에서 함께 하니 밝게 느껴졌다 . 손으로 발전기를 돌려서 전력으로 LED 등을 키는 시스템이었는데 따로 배터리를 쓰지 않아서 오래기간 쓸 수 있었다 . 발전기를 같이 만들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니 벌써 시간이 10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이곳 현지인들은 8 시쯤 잠을 자고 5 시에 일어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한다고 한다 . 불을 끄고 우리도 잠을 잤다 .

 

하루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지 않고 바로 옆에서 같이 생활했기 때문일까 . 밝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 .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준 현지 주민들 . 이들 모두에게 너무 감사하다 .

 

 

 

2011.07.17. 7 일째 , 천 개의 시선을 바라본 날

주요 방문 장소 : 캄퐁창 마을 , 씨엠립

 

새벽에 닭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 다른 친구들은 아직도 자고 있는 중이고 홈스테이 사람들도 자고 있으셨다 . 한번 잠이 깨면 쉽게 잠이 들지 않아 밖을 나가봤다 .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 하늘을 바라보니 셀 수 없이 많이 별들이 있었고 북두칠성이 그렇게 크고 가깝게 보인 적은 처음이다 . 한국에서도 별들을 봤는데 캄보디아에서 바라보는 별은 너무 아름답고 크게 느껴졌다 .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고 셀 수 없이 많은 수천 개의 별들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 그러다 나무 틈 사이로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걸 봤는데 정말이지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 정말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밤하늘을 구경하니 해가 슬금슬금 떠올랐다 . 한쪽에는 달이 , 반대쪽에는 해가 떠있는 경치를 봤다 . 해가 뜬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소들이 하나 둘씩 나왔고 소를 타고 가는 아이도 있고 , 오토바이를 타고 저마다의 일터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 시계를 보니 5 시가 채 안된 시각 .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홈스테이 식구들이 깼고 연수단 친구들과 일어났다 . 아침 식사를 하러 본부에 간 후 컵라면으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공부방으로 모였다 . 공부방에 모여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해 간략하게 브리핑을 들었는데 오늘은 공부방에 도색을 하고 안에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 일을 시작하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옆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 너무나 맑고 귀여운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이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껴안고 장난을 치며 같이 놀았다 .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우리를 기억할까 . 그렇게 아이들과 놀고 일을 하면서 마무리를 짓고 떠나야할 시간이 다가오자 현지마을 주민들이 모였다 . 공부방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 그리고 나서 떠나야했지만 한동안 아이들 , 현지주민들과 함께 웃으며 얘기를 한다 .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게 너무나 과분했기에 쉽게 발걸음이 떠나지 않았다 . 이제는 정말 이동해야 된다는 얘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고 그들을 뒤로 한 채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는 씨엠립으로 향했다 .

 

1 2 일동안의 시간과 추억이 내 머리 속엔 또렷하게 남아있다 . 새벽하늘 떠 있던 수천 개의 눈이 날 바라본 그때 그 순간처럼 . 내 버킷리스트에는 항목이 하나 추가됐다 . 언젠가는 다시 이 장소에 오겠다는 약속 . 꼭 지키겠다 .

 

 

2011.07.18. 8 일째 , 찬란히 빛난 문화

주요 방문 장소 : 앙코르 톰 , 앙코르 와트 , 바이욘 사원

 

씨엠립에 도착하고 난 후 피곤해서 짐을 풀고 난 후 잠을 잤다 . 자고 일어나니 날이 밝아있었고 호텔 조식을 간단히 먹은 후 버스에 올라탄다 . 오늘은 캄보디아의 문화를 탐방하는 날이다 . 영화배우 Angelina Jolie 가 툼 레이더를 로케이션한 장소라서 유명해진 앙코르 톰 , 캄보디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앙코르 와트 ,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이욘 사원을 방문한다 .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가이드의 간략한 브리핑을 듣고 간다 . 사원의 규모와 역사에 눈이 커진다 . 오랜 세월 전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캄보디아를 사원들은 하나같이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 족히 몇 백년 , 천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뿌리가 사원을 휘감고 있었고 사원은 빛이 바래있었지만 조각상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 섬세하게 새겨져있는 조각상들 , 벽화들 . 국가의 종교가 바뀌면서 강압적으로 바꾼 조각상들의 흔적들 . 모든 게 그대로 남아있었다 . 안타까웠던 점은 문화재를 복원한다고 하면서 다시 사원 건축물들을 조립하고 있었다 . 각국의 문화재청에서 도와주는 것이라 했지만 나는 이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 문화재를 복원해야하는데 왠지 새로 문화재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모양은 비슷해도 벽돌의 색깔도 다르고 품고 있는 세월의 가치가 다른데 , 굳이 이걸 이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이 든다 . 그 나라를 제대로 알려면 문화를 먼저 공부해라는 말이 있다 . 오늘 내가 만난 캄보디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자신만의 문화가 있고 유산이 있는 나라였다 .

 

 

2011.07.19. 9 일째 , 한끼 식사의 소중함

주요 방문 장소 : 다일공동체 , 톤레삽 호수 , KOICA 씨엠립 우회도로 사업 ( 한국도로공사 )

 

오늘 일정은 NGO 단체인 다일공동체를 방문 , 바로 옆에 위치한 톤레삽 호수를 살펴보고 , KOICA 무상원조 사업인 한국도로공사가 함께하는 씨엠립 우회도로 사업을 살펴본다 . 첫 번째 일정인 다일공동체를 방문했다 . 다일공동체는 밥퍼로 유명하신 최일도 목사가 설립한 단체다 . 다일공동체는 지역커뮤니티에서 한끼 식사를 제공해주고 있었는데 어린이들이 대상이고 사회적 소외계층이 차 순위라 한다 . 우리도 팀을 나눠 오전에 봉사활동으로 다일공동체를 도와드렸다 .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배달할 빵을 만들고 , 점심식사를 할 때 대접할 식사를 만들었다 . 수박 껍질을 벗기고 자르고 배식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 그리고 현지 스텝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 다일공동체가 좋은 일을 하는 단체임에는 분명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봉사를 하는데 있어 종교적인 선교를 함께 한다는 게 불편하게 다가왔다 . 원조 사업은 원조가 목적이 되어야지 , 선교를 하는데 있어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생각하는데 . 그래도 다일공동체는 종교적인 색깔에 따라 배제하거나 공격적인 선교 활동을 하진 않는 것 같다 . 우리나라 NGO 단체들 중 대다수가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데 , 원조가 목적이 되어야지 . 주객이 전도가 되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면 좋겠다 . 다일공동체에서 봉사활동을 마친 후 우리는 내부 회의를 해서 다일공동체에도 100 불을 기부했다 . 100 불이면 한 끼 식사로 300 여명 정도가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 그들의 한끼 식사에 우리가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일정을 마치고 톤레삽 호수를 방문했는데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 이렇게 많은 수자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물이 귀하다는 얘기가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 보다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평등하게 사람다운 삶을 영유할 권리를 어서 빨리 가지게 되길 기원했다 . 이어 마지막으로 KOICA 사업인 씨엠립 우회도로사업을 살펴봤다 . 도로공사 직원분이 나와주셔서 브리핑을 해주셨다 . 씨엠립에 있는 문화재인 앙코르 사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우회하는 도로망을 지원하고 있다고 하셨다 . 문화 인프라를 보호하는 사업도 원조 사업 중에 하나로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

 

원조를 금액으로만 바라봤던 시야에서 , 원조가 얼마나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금액을 얼마가 주는지가 중요하기보다는 원조를 수원국이 필요한 방법을 찾아 맞춤원조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

 

 

2011.07.20. 10 일째 , 캄보디아를 돌아보다 .

주요 방문 장소 : 간담회 , 서바라이 저수지 , 씨엠립공항

 

오늘은 간담회가 있는 날이다 . 떠나기 전 연수단끼리 모여 간담회를 하는데 각자 소감을 간단히 말하는 자리다 . 각자 말하는 소감은 달랐지만 캄보디아가 우리들에게 준 경험은 결코 녹록치 만은 않다 . 나는 캄보디아 ODA 연수일정을 소화하면서 느낀 점이 수업에서는 원조에 대해 거시적인 시야 , 정책적인 부분을 주로 조명했다면 캄보디아 ODA 연수에서는 이들이 실제 필드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미시적인 부분을 살펴봤다고 생각한다 . , 캄보디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고 느끼면서 무작정 급속한 발전 , 개발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기보다는 환경을 보존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

 

 

2011.07.21. 11 일째 , 여정의 끝에서 새로운 출발을 말하다 .

주요 방문 장소 : 인천공항도착

 

씨엠립 공항을 떠나 인천공항을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 한국에 도착하고 나면 공식적인 2011 한기대 캄보디아 ODA 연수 일정은 끝이 나지만 더 많이 공부하고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 오늘은 여정의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날이다 . 이곳에서 듣고 말하고 배우고 느꼈던 부분은 평생토록 간직할 내 자산이 될 것이다 . 국제개발협력 동아리 EASTFACE 선배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제발 불쌍한 눈으로 쳐다 보지마 . 우리보다 조금 못 가진 것 뿐이지 . 우리들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들이니까 . 아니 우리가 더 많이 가져서 불행한 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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