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 월 10 일 ( 수 ) 코리아텍 담헌실학관 102 호에서 열린 코리아텍 인문강좌에서 정성희 실학박물관 책임학예사가 “ 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라는 주제로 강좌를 진행했다 .
정 학예사는 ‘ 홍이포 ’ 라고 불리는 대포의 모형사진을 보여주며 강연을 시작했다 . ‘ 서양의 대포 ’ 라는 뜻을 가진 홍이포가 사용된 시기는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되는 17 세기였다 . ‘ 서세동점 ’ 즉 , 서양의 문물이 동양으로 점점 밀려들어오는 시기가 17 세기이며 , 서세동점의 상징적인 물건이 바로 청나라를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 ‘ 홍이포 ’ 였다 .
다음으로는 ‘ 마테오 리치 ’ 라는 동아시아에 로마 가톨릭을 전파한 이탈리아 출신 선교사가 소개되었다 . ‘ 마테오 리치 ’ 는 17 세기 초 , 중국에 서양 문물을 전파한 인물이다 . 그는 천동설과 남반구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중국에 전파했고 그 외에도 수학 , 천문학 , 역법 , 시계 , 지구의 , 천체관측기구 제작법 등을 전파함으로써 중국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17 세기 조선은 북벌론의 영향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지 못했다 . 100 년이 지난 18 세기 숙종의 집권 시기에 천문도와 세계 지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 곤여망국지도 ’ 라는 세계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 이 지도는 당시 중국 ·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지식인에게 서양의 지리학과 지도의 제작 수준 , 서양 세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시각적으로 널리 알려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
18 세기 조선엔 담헌 홍대용이 있었다 . 그가 속한 가문은 그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의 핵심 문벌로 마음만 먹으면 출세를 할 수 있었다 . 하지만 그는 순수한 학문의 길을 선택했다 . 그는 ‘ 우주는 무한하다 ’, ‘ 지구는 자전한다 ’ 라는 주장을 펼치고 , 직접 천문기기를 만들어 증명해 내는 등 ‘ 실사구시 ’ 의 이념을 가진 실학자였다 .
홍대용은 꽤나 비범한 인물이었다 . 중화사상이 당연하던 시절 , 중화사상을 비판하고 또한 우주가 무한하다고 생각하며 ‘ 무한한 우주엔 반드시 인간과 비슷한 지적존재가 존재할 것 ’ 이라고 생각했다 . 또한 ‘ 지구와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 라며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 또한 서슴지 않았다 . 정 학예사는 ‘ 주류에서 태어나 비주류의 인생을 택한 인물 ’ 이라고 담헌 홍대용을 표현했다 . 또한 , ‘ 세계적인 인물이 세계적으로 떠오르지 않아 아쉽다 ’ 라고 했다 .
담헌 홍대용이 1765 년에 중국에 다녀온 이후 작성한 < 담헌연기 > 는 조선시대 3 대 연행록에 꼽히며 같은 3 대 연행록에 있는 연암 박지원의 < 열하일기 > 또한 박지원이 홍대용의 영향으로 중국에 간 뒤 쓰여진 연행록이다 . 정 학예사는 “ 홍대용은 그만큼 동시대의 학자들에게도 선구자였으며 , 후세에겐 민간 과학 발전의 토대를 만든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 고 말하며 강연을 갈무리 했다 .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학생들의 “ 다산 정약용과 담헌 홍대용은 동시대인데 서로 교류를 했습니까 ?” 라는 질문에 “ 두 학자의 학파의 차이가 있어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간접적으로 서로 영향을 받았을 것 ” 이라고 답했다 .
취재 : 서진호 , 사진 : 이예진 ( 재학생 홍보대사 나래 9 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