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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KOREA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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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몽골해외봉사 소감문>
“어려운 세계 이웃들에게 따뜻함과 다양한 체험 선물 받아”
등록일 : 2010-07-08
조회수 : 4,698
글. 재학생홍보대사 강빛모아(신소재공학과 3학년)

  1. 몽골 도착 전까지  

대학생에게는 보통 약 2달 정도의 여름방학이 주어진다. 그 시간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공평하게 흘러간다. 그 중에는 부지런하게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하루하루를 적당히 여유롭게 천천히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방안에서 먹고 즐기면서 말 그대로 방학 내내 휴식만 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자신 또한 방학에 앞서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매번 철저하고 섬세한 계획들을 세웠다.

1분 1초도 뜻 깊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 방학 계획표를 만들어 꼭 이번 방학은 열심히 노력해서 큰 결실을 맺어보자는 다짐과 함께 약간의 무리수를 두고 방학 첫 날부터 계획표대로 시간은 흘러간다. 하지만 노력은 했으나 결국 생각처럼 되지 않았었다. 이러한 경험은 다른 대학생들 모두 공감 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꼭 이번 3학년 여름방학은 절대 부담 없이 계획에 무리수를 두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좋은 추억을 남기기로 결정했다.

 알차고 보람 있는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 중에 내가 해보지 못한 해외 봉사활동이 떠올랐다. 국내 봉사활동을 시간이 날 때마다 해오던 고등학교 시절, 대학생이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한 가지가 해외 봉사활동이었다. 주위에서 특히 가족들의 걱정은 엄청났지만 내 스스로 그 걱정을 뿌리치고 해외 봉사활동에 참여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해외 봉사활동은 그 나라의 문화, 언어, 생활환경 등을 체험해보고 배울 수 있으며 특히, 언어가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몸짓과 마음을 통해 따뜻함을 전달함으로써 정을 쌓는 진정한 봉사의 매력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봉사활동을 생각하던 중 학교 홈페이지에서 여름방학 기간 동안 몽골해외봉사활동의 기회가 있다는 공지사항을 보게 되었다. 그로인해 나는 몽골 해외 봉사활동에 지원하게 되었고 합격자 발표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합격자 발표 당일 몽골 해외 봉사활동 봉사자 명단에는 운이 좋게 내 이름이 있었고 그것을 보는 순간 이번 여름 방학은 정말 지금까지의 방학과는 다르게 뜻 깊게 보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빠져 들뜨게 되었다.

 이번 몽골 해외 봉사활동은 우리학교에서는 처음으로 주관하는 프로그램으로 매우 뜻 깊은 행사였다. 처음 주관하기 때문에 매년 몽골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주관해오던 단국대학교의 도움을 받아 함께 봉사활동을 가는 것이었다. 단국대학교에는 몽골어학과가 있어 오래전부터 매년 몽골 해외 봉사활동을 실시 해왔다. 그래서 우리학교는 단국대와 공동으로 이번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단국대학교 학생 50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학생 30명의 학생들이 다함께 몽골 해외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다.

 합격 발표 후,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우리와 함께할 단국대학교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조별 모임을 통해 9박 11일 동안 함께 할 조원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첫 모임에서 일단 학교가 다르고 같은 학교이지만 잘 모르는 사이였기 때문에 다들 낯설기만 했다. 그러나 조별모임과 오리엔테이션 이후 메신저 등을 통한 연락으로 낯설음을 덜어냈고 발대식에서 다시 한번 얼굴을 보고 친숙해질 기회가 되었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6월 19일, 몽골 해외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참가 학생 모두는 인천공항에 모두 집결하였다. 인천 공항으로 가는 길에 나는 몽골로 봉사활동 가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공항에 들어섰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한국을 떠나 낯선 나라로 간다는 것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느껴졌었다.  

 공항에서 출발 전 기념사진을 찍고 조별로 모여 이동을 하였다. 지금부터는 단국대와 한기대 학생이 아닌 ‘2010 몽골 해외봉사활동’을 같이 가게 된 동료가 되었다. 몇 번 얼굴을 봤음에도 아직도 어색함에 서로 어쩔 줄 몰랐지만 비행기 탑승 전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통해 친해 질 수 있었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과 비로소 몽골로 출발한다는 기대감을 안고 비행기에 탑승 하였다.

2. 몽골에 도착

 약 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했다. 칭기즈칸 공항은 인천공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매우 작은 규모였다. 입국심사를 통과하고 짐을 찾은 뒤 공항에 있는 화장실에 갔는데 변기 구조와 세면대 구조 등을 보고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몽골 공항에는 단국대학교 몽골 유학생 학생들이 환영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몽골 유학생은 단국대학교 몽골어 학과에서 몽골로 유학을 간 학생들과 실제 몽골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환영을 받으며 우리는 9박 11일 동안 머물 가초르트 85학교로 가기 위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매년 봉사활동 때마다 통역과 기타 도움을 줘왔던 한국인 유학생 오빠를 통해 몽골 문화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시내 임에도 불구하고 불빛이 많지 않았고 도로가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 특이하였다. 그리고 차들이 쌩쌩 달렸는데 몽골에서는 차를 말 몰듯이 운전하기 때문에 특히 차조심을 해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창밖을 구경하고 설명을 듣다보니 어느새 85학교에 도착하였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학교에서 일을 봐주시는 분들과 아이들 몇 명을 볼 수 있었다. 몽골 인사인 ‘센베노’로 인사를 하고 지정된 숙소에 짐을 풀러 들어갔다. 내가 사용한 숙소는 4인실 이었는데 같은 조원 한명, 몽골 한국인 유학생 두 명과 함께 사용하였다. 처음 숙소에 들어갔을 때 페인트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사용하는 침대는 나무침대에 이불이 가지런히 정리 되어 있었다. 9일 동안 지낼 곳에 우리는 정들기 위해 이곳저곳 살펴보고 적응하는 연습을 하였다. 짐을 다 풀고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갔는데 여기서도 새로운 난관에 부딪쳤다. 몽골은 대륙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옛날부터 물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물이 콸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졸졸 나왔다. 한국에서는 물을 펑펑 썼었는데 졸졸 나오는 물에 씻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더 힘들었던 것은 물의 온도였다. 따뜻했으면 오히려 좋았을 걸 몽골의 물은 마치 얼음이 바로 녹은 물 그 정도의 물의 온도였다. 세수를 하는 그 짧은 시간에도 손이 얼얼하여 온갖 호들갑을 떨며 씻었다. 양치를 할 때에도 이가 시려워 정말 곤욕이었다. 그리고 화장실도 물을 내리는 환경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난감하였다.

 그렇게 어려움을 느끼고 점호를 끝내고 몽골 유학생들과 인사를 한 뒤 짧게 조별 모임을 가졌다. 아직도 낯설었지만 9일 동안 같이 지낼 조원들과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대화를 하며 어색함을 풀어나갔다. 몽골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3. 가초르트 85학교에서의 나날들

 6월 20일 아침 잠자리가 바뀌어 뒤척이며 잠들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리는 운동장에 집합하였다.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의 시작을 알 수 있었다. 첫째 날의 일정은 앞으로 할 봉사활동계획을 세우고 조끼리 토론하며 학교를 살펴보는 일정이었다. 먼저 집합이 끝나고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 식사는 봉사활동으로 요리를 지원한 한기대 학생 2명과 단국대학생 1명이 몽골의 식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주었다.

 몽골에서 처음 먹는 식사였는데 밥은 우리나라 밥보다 푸석푸석했고 반찬은 우리나라 반찬과 비슷하게 조리해서 먹을 만하였다. 그런데 첫날 밤 찬물로 씻고 피로가 덜 풀리고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이 좋지 않았다. 잠시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오른 열로 고열에 시달렸다. 낯선 곳에 와서 아프기까지 하니 너무 서러웠는데 단국대학교 몽골어학과 유학생언니가 옆에서 계속 간호를 해주었고 마침 의료 봉사를 온 단국대 의대팀 선생님들 께서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금방 회복 할 수 있었다.

 타지에서 아픈 것이 정말 힘들었는데 많은 사람의 걱정과 관심으로 빨리 회복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아픈 동안 봉사활동을 하러 온 것인데 아파서 다른 봉사활동 하는 친구들에게 폐가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더 빨리 회복하려고 노력하여서 4일째 되는 날 부터는 봉사활동에 참가 하였다.

 우리조가 했던 일은 85학교 건물 벽에 벗겨진 페인트를 다시 칠하는 작업이었다. 높은 벽은 오빠 들이 페인트칠을 하였고 여자들은 낮은 곳과 창문 같은 곳에 튄 페인트를 제거 하는 작업을 하였다. 원래 몽골의 날씨는 낮에 햇빛이 강해도 습기가 없어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날씨인데 우리가 갔을 때는 8년만의 폭염으로 낮에 밖에 서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임했다. 페인트칠을 하는 도중에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어린 몽골 학생들이 우리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은 낯가림도 없이 먼저 반갑게 인사하였고 장난을 걸었다. 우리 조는 계획했었던 일정보다 작업을 일찍 끝내게 되어 고아원방문 봉사활동도 가게 되었다. 우리가 간 고아원은 방학 때마다 아이들이 모이는 고아원이었다. 아이들을 책임지는 사람은 미국 흑인 여자 분이셨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우리가 갔을 때는 그곳으로 봉사활동을 온 홍콩국제학교 학생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들과도 간단히 인사하였다. 그런데 반갑게도 그 중에 한국인 학생이 있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고아원에서도 아이들은 우리를 잘 따랐다. 특히 한 여자아이가 나를 잘 따라주었는데 그 여자아이는 매우 활발한 성격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어떻게 놀자 하는 것을 몸으로 가르쳐주어 선생님들과 동료들과 아이들과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좀 친해지나 싶었는데 벌써 85학교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아직도 고아원 방문했을 때 만난 아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교육봉사 일정과 노력봉사 일정이 끝난 마지막 날에는 교육봉사를 한 학생들이 몽골 아이들과 준비한 학예회를 열었다. 학예회를 보는데 언어가 다른데 한국어로 공연하는 몽골 아이들을 보면서 뭔가 짠한 것을 느꼈다.

 학예회가 끝나고 학교 앞에 있는 강가에서 양고기 파티를 하였다. 특별히 85학교 선생님들께서 우리에게 몽골전통기념품을 직접 나누어주셨고 우리는 모두 모여 양고기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고기가 많이 비려서 못 먹는다고 했었는데 이번엔 특별히 신경 써서 조리해주신 덕분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계획했던 봉사활동을 잘 마무리 하였다.

4. 몽골 문화 탐방

 봉사활동이 모두 끝난 뒤에는 몽골의 문화를 직접 눈과 귀와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첫 번째로 초원에서 말을 타는 경험을 하였다. 내가 탄 말은 혼자타기에 위험한 말이었기 때문에 유목민 꼬마아이가 앞에서 잡아주었다. 낙마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으나 직접 말을 타고 초원을 거니는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말을 움직이게 하려면 ‘추-’ 라는 소리를 이용하여 움직이게 하였다. 안전한 말을 탄 사람들은 ‘추- 추-’ 소리를 내니까 정말 말이 달렸다. 나도 안전한 말을 타서 달리고 싶다라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재미있었다. 말에서 내린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칭기즈칸 박물관 견학을 갔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칭기즈칸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견학을 마친 뒤 특별히 하루 동안 몽골의 전통 가옥인 게르로 갔다.

 게르는 차를 타고 지나다니면서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실제로 내부를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좋았다. 각자 게르에 짐을 풀고 모여서 몽골의 전통놀이와 전통가요 공연을 봤다. 공연 내용은 씨름, 말을 타는 모습, 요가, 등을 볼 수 있었는데 전통요가 하는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공연도 보고 식사도 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원래 밤이 되면 별이 잘 보이는 곳이라고 해서 기대 했었는데 우리가 간 날이 보름날이어서 별을 잘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게르로 돌아와 같이 방을 쓰는 사람끼리 누워서 이야기를 하다 스르르 잠들었다. 다음날에는 시내투어를 하였다. 제대로 된 전통 공연을 극장에서 보았으며 몽골유학생들과 함께 조별로 관광도 하였다. 그리고 식사는 한인식당에서 하였다. 실제로 몽골에는 한국인이 많이 거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밥이라서 그런지 다들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도 더 먹으라며 많이 챙겨주셨다.
               

5. 귀국

 이번 해외 봉사는 우리학교가 처음 시행했다는 것과 단국대학교와 함께 갔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봉사였다. 9일이 길 것 같았으나 눈 깜짝할 새 지나갔고 어색함도 잠시 9일 동안 단국대 한기대가 아닌 하나가 됨을 느꼈다. 처음에 몸이 아파 많이 고생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금새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에 아직도 감사함을 잊을 수가 없다.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환경이어서 생활하는데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물이 잘 나오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볼까 라는 생각으로 잘 버틴 것 같다. 이런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동료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식사하는데 있어서 음식이 맞지 않는 학생들은 고생한 점이다. 몽골의 식재료를 사용하다보니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을 하였다. 특히 매 식사에 고기가 나왔는데 몽골 고기의 특유의 향 때문에 고생했던 것이 잊혀 지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식생활을 경험하는 차원이지만 다음번에 가는 봉사활동에서는 몽골의 식재료만을 계속 이용하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 식재료도 챙겨가 번갈아서 배식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다음으로 아쉬웠던 점은 조별로 활동을 하는 것이 많아서 다른 조원들과 많이 친해질 기회가 없었던 점이다. 봉사활동을 마친 후에는 자유시간을 줬는데 그 자유시간을 이용하여 프로그램을 만들어 다른 조와도 함께 어울리며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번 해외봉사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많은 문화 경험과,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특히 몽골의 생활을 보고 그 동안 해왔던 내 행동들이 많이 부끄럽게 느껴졌고, 내가 태어난 곳과 나의 부모님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깨달았다.  내 인생에 정말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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