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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인터뷰

  • 동문 인터뷰
교환학생 프로그램 수학 결과보고서
메카트로닉스공학부 김진명
등록일 : 2012-06-04
조회수 : 6,550
한국기술교육대학교는 최근 글로벌역량이 매년 강화되고 있습니다. 입학홍보팀에서는 해외인턴십 및 교환학생, 단기 프로그램 등에 참여한 학생들의 소감문을 연재해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당부드립니다.


파견대학 : 미국 미시시피대
파견기간 : 2011.08.18 ~ 2011.12.10
학      부 : 메카트로닉스공학부
성      명 : 김진명
학      년 : 2학년

 

사실 저는 미국 미시시피 대학교로 교환학생으로서 가기 전에 단기 어학연수생으로서 그 학교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 학교에 대해 훨씬 학교를 잘 알고 파견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설레는 마음은 덜 했지만 한 학기동안 영어 , 학업 , 문화 모두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오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

미국 미시시피 대학교의 캠퍼스 크기는 우리학교보다 훨씬 크고 갖추어진 시설의 종류도 다양했기 때문에 학기 내내 즐거웠습니다 . 운동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체육관을 포함하여 도서관도 아주 컸고 식당도 뷔페식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 사실 저처럼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이라면 미국에서 살을 많이 찌워 오리라 생각합니다 . 저는 기숙사 즉 on campus 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JC100 으로 한 학기동안 밥을 먹기에 충분했으며 , 기숙사에 사는 학생이라면 unlimited 로 신청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

옥스포드에서 생활하다 보면 학교가 시골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미국의 화려한 브랜드숍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 저는 이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내오다가 대 도시인 뉴욕에 다녀오고 나서 학교가 정말 시골에 위치 해 있어서 제대로 된 쇼핑은 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대신 한두번 정도 International office 에서 주관하던 멤피스의 아울렛으로 가는 쇼핑트립의 기회를 유용하게 썼습니다 .

학교가 꼭 1 주일씩 중간 방학을 갖는데 제가 갔던 Fall semester 의 우리학교는 thanksgiving week 를 방학으로 잡고 1 주일간 쉬었습니다 . 그때는 학교의 건물은 모두 다 닫고 기숙사에서 지내던 학생들도 모두 집을 나가야 합니다 .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환학생들은 off campus 에 위치한 university trails 에 살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걱정은 없었지만 , 사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한주동안 각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 저와 저의 친구들은 뉴욕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 black Friday 라고 해서 thanksgiving day 가 순익 분기점을 넘는 시점에 물건들을 대폭 할인하는 때가 있는데 이때를 노려 뉴욕으로 갔습니다 . 뉴욕은 정말 볼거리가 많았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타임스퀘어로 유명한 명소이기도 하고 원래 사람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매우 붐볐습니다 . Macy's 백화점의 퍼레이드는 너무 유명해서 기대를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뭘 제대로 본건지도 모르고 그냥 와버려 아쉬웠습니다 . Black Friday 였지만 생각만큼 대폭할인을 하지도 않았고 마음먹고 물건을 사지 않아서 쇼핑은 실패하고 돌아왔습니다 .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차가 필요한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 유학생 분들이 차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으니 유학생 분들과 친하다면 가끔씩 얻어 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그분들도 차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가끔씩 라이드를 해주시곤 합니다 .

저는 주로 수학과목 위주로 들었는데 , 그래서 성적이 잘 나온 것 같습니다 . 특히나 우리학교에서는 쉽게 A 를 받기 힘든 미분방정식과 같은 과목에서는 미국인이 수학을 잘 못해서 그런지 , 중간시험 세 번을 거의 만점으로 받으니 교수님께서 기말고사 없이 A 를 주시는 기분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 수강하려는 과목은 저처럼 공대생이고 저학년이라면 아직 듣지 않은 수학과목을 듣는 것이 유리할 것입니다 . 체육과목을 듣지 않았다면 체육과목을 하나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저는 전공 2 과목도 들었는데 하나는 우연히 또 수학 과목이었고 다른 한 과목은 교수님이 까다로워 어려운 듯 했지만 마지막에는 성적이 잘 나와 뿌듯했습니다 .

제가 살던 곳은 university trails 라는 아파트형식의 집이었는데 , 대부분의 교환학생들이 여기서 살게 되었습니다 . 캠퍼스 까지는 버스로는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여 넉넉잡아 25 분정도 걸리고 , 걸어서는 30 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 그런데 저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교환학생이라면 학교를 좀 더 느끼고 와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했습니다 . trails 에 사는 학생들은 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 버스는 7 시면 모두 끝나는데다가 , 주말에는 버스 운행이 없어 trails 에 갇혀있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 캠퍼스 까지 맘먹고 걸어갈 수 있지만 , 가는 길에 인도가 없는 곳이 있어 위험하기 때문에 걸어서 캠퍼스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 물론 방을 혼자 쓰면서 룸메이트와 부엌과 거실을 공유하는 시스템은 좋았으나 캠퍼스와 너무 멀기 때문에 밤에 도서관에 남아서 공부하기도 힘들고 , 밤의 캠퍼스의 모습을 감상하기도 힘들었고 , 주말에는 더더욱 갇혀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 기숙사를 제외하고라도 학교와 가까운 아파트 형식의 거주지가 있는데 , 굳이 차가 없는 교환학생들을 이곳으로 몰아넣어 학생들의 불만 사항이 조금 있었습니다 . 아마도 이번 2011-2012 년도의 신입생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기숙사의 부족으로 인해 교환학생들이 뒤로 밀려난 것 같아 이 부분에서 교환학생에 대한 편의가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저번 학기에 단기어학연수생으로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이미 계정이 있었고 , 일처리가 답답한 미국의 특성상 제 계정에 있는 모든 돈이 처리가 되지 않아 , 저는 저도 모르게 약 6 개월간 빚을 지고 있었고 이자가 쌓여가는 중이었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수강 신청을 하는데도 hold 가 걸려서 남들보다 수강신청이 늦어졌고 계속해서 여러 오피스를 찾아가는 등 남들보다 훨씬 어렵게 수강신청을 마친 것 같습니다 .

학교에는 다른 주에 비하면 비교적 다양하지 못한 인종이 존재하는데 , 특히 백인의 비율이 높고 흑인이 그 다음으로 많습니다 . 아시아계는 거의 그 숫자가 드물었습니다 . 특히 한국인 유학생 중에서 정식으로 입학한 학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한국에 본 대학을 두고 본 대학의 제도를 통해 온 학생들이나 편입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 Ole Miss 의 백인 학생들의 다수가 부유한 시골 부자의 자제들이었으며 , 벤츠나 아우디 같은 고급 차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습니다 . 수업시간에 이들 학생과 친해지는 것은 언어의 장벽과 함께 더불어 자신감의 부족으로 인해 저에겐 너무 힘들었지만 , 대신 다른 프로그램등을 통해 친해지는 것이 그나마 나았지만 그 마저도 그들과 쉽게 친해지기는 힘들었습니다 .

학교 주변에 놀러갈 만한 곳은 square 라고 해서 옥스포드시의 시청이 위치한 곳이 있었습니다 . 종종 그곳으로 친구들과 혹은 혼자 놀러가서 여유를 즐기곤 했습니다 . 밤에는 bar club 도 여러 개 있어서 가끔씩 놀러가곤 했습니다 . 하지만 오랫동안 걸어가지 않는 이상 왕복 택시비 10 달러를 감안해야 했습니다 .

제가 있던 가을학기에는 풋볼경기가 열렸었는데 , 올미스는 풋볼경기로 유명한 학교입니다 . 사실 저는 시즌 티켓을 100 불 정도를 주고 구입했는데 이번 학기는 두 번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 져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 학교신문을 보니 총장이 코치를 잘랐다는 말이 나와 있던데 그 정도로 풋볼에 대한 열정은 컸고 학생들 모두가 실망감이 큰 눈치였습니다 . 처음엔 풋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저도 경기를 관람하면서 점차 재미를 느꼈지만 , 연패하는 우리 팀을 보며 코치를 자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산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 Blind side 는 올미스 출신의 유명한 풋볼선수에 대한 내용이며 올미스가 배경이었고 그만큼 풋볼을 잘 하는 학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경기 관람중 옆자리에 있던 미국인이 올미스는 2 년 전만 해도 풋볼을 아주 잘하는 학교였다고 말해주었고 , 제가 지금은 왜 이렇게 못하는 것인지 물어보니 잘하는 상급생들이 모두 졸업을 했기 때문이라고 답해주었습니다 . 풋볼경기를 관람할 때는 거의 모든 사람이 갖춰 입고 나옵니다 . 이것은 우리 학교만의 특성인데 여학생들은 빨강색이나 남색의 원피스에 힐을 신고 들어가고 , 남학생들은 폴로 남방에 벨트를 맨 반바지를 입고 들어가는데 모든 사람이 똑같이 입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났었습니다 .

올미스의 일상패션은 한결같습니다 . 학교가 남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제가 떠나온 12 10 일 까지 그리 춥지 않았고 여름에는 특히 햇살이 강했습니다 . 학생들은 대부분 런닝팬츠와 운동화 , 백팩에 티셔츠를 입고 다녔는데 , 티셔츠에 써있는 글귀를 한국인들은 아무 신경도 안쓰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 티셔츠의 디자인 보다는 ( 디자인은 한결같이 박스티입니다 .) 써있는 글귀 , 예를 들어 fraternity sorority 의 홍보 , 전공 티셔츠 등등 아무 티셔츠나 입지는 않고 글귀를 따져가며 티셔츠를 입는 듯 했습니다 . 또한 듣자하지 오직 올미스에서만 이런 한결같은 패션을 고수한다고 합니다 . 겨울쯤 되면 점차 추워져서 사람들이 따뜻한 옷을 입는데 , 이 때도 레깅스를 입는 사람은 똑같고 , 부츠에 털실같은 소재의 노스페이스 옷을 입습니다 . 생각해 보면 청바지를 입은 백인여자는 드물었습니다 . 서로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학교 안에서 유행하는 옷을 똑같이 입고 다닌 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습니다 .

미국인의 특성인지 , 남부 사람의 특성인지 , 개인의 차이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 성격은 개인의 차가 큰 것 같았습니다 . 사람을 대할 때 , 이 사람이 그렇다고 해서 같은 미국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또한 남부사람들은 대부분 특유의 사투리가 있었는데 이 말투를 처음에는 정말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 남부 사투리와 대학생들이 쿨하게 말하기 위해 질질 끌며 말을 하는 것 , 그리고 흑인의 특유 말투를 구분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 나중에 뉴욕에 갔을 때 제가 같은 말이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던 것을 생각하며 남부 사투리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 특히 흑인들 끼리 쿨해보이려는 건지 본래 흑인의 고칠 수 없는 말투인건지 흑인 특유의 리듬감 있으면서도 끝을 흐리는 말투는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 또 미국인들은 대화를 하다가 역사를 끄집어내어 섞어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남자와 얘기할 때 심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역사나 또는 정치에 관한 얘기를 한국인 교환학생들에게 까지 서슴없이 꺼낼 정도라면 그들끼리 얼마나 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 출신 지역을 묻는 것은 기본입니다 . 처음 만난 사람이 있을 때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 일이 많았고 (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묻는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건 아니군요 ), 어느 주의 어느 도시에서 왔는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중요 사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Fraternity Sorority 는 거의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전부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 제가 직접 이것에 관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파티에 관한 것뿐이었습니다 . 매 주마다 Fraternity 파티를 하는데 여자는 초대받지 않아도 입장 가능하고 남자는 꼭 초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안에 들어가면 정말 미국 대학생의 파티는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고 ,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 fraternity sorority 에 속한 학생들은 매일 자신들의 greek 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일이 많고 , sorority 학생들은 sisterhood 를 중요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 또는 매일 드레스 코드가 있어서 같은 greek 끼리 옷 스타일을 요일별로 맞춰 입는 곳도 있었습니다 .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에 속해있었지만 , 많은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들지 않은 친구도 있었습니다 . 또한 오로지 백인들만을 위한 모임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흑인이나 아시안들 중 이에 속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

미국엔 파티 문화가 정말 잘 되어있는데 , 저도 사람 몇 명을 모아서 파티라고 부를 수 있는 모임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 하우스 파티에도 가보았는데 사람들 술을 마시고 춤추며 흥겹게 노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 특히 할로윈 파티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저는 코스튬을 입지 않았지만 반드시 코스튬을 하고 나가야 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

미국은 한국보다 경찰의 지위가 높고 권력이 강하기 때문에 경찰조심은 필수입니다 . 특히 보통 생활 속에선 운전할 때 조심해야 하는 데 , 차가 없는 교환학생들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제가 본 바로는 학교 이곳저곳에 설치 된 stop 사인을 다른 차나 사람이 없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되고 , 음주운전은 걸리면 끝장입니다 .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길가에 차를 세워둔 채 수갑을 채우는 장면도 몇 번 보았습니다 . 한 번은 친구가 밤 11 시가 넘어서 쯤 아무도 없는 호수가 근처에 차를 대충 주차해놨는데 , 경찰이 와서 장애인 구역에 주차를 했다는 이유로 500 불을 벌금으로 청구하고 돌아갔습니다 .

저는 이번에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녀왔습니다 . 중요한 지역은 거의 모두 찍고 온 것 같습니다 . 저번 학기 겨울에는 New Orleans 에 다녀왔고 , 이번 Thanksgiving week 에는 New York 에 다녀왔고 , 학기가 끝나자 Florida, Chicago, California, Las Vegas 에 다녀왔습니다 . 환승하느라 몇 번 씩 찍은 곳인 Atlanta Dallas 를 합하면 정말 많습니다 . 각 곳에 많은 추억들을 남기고 와 좋았습니다 .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가 있습니다 . 플로리다에서 인터넷을 하기 위해 로비에서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 제가 Ole Miss 가 적혀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펜실베니아에서 오신 할아버지가 제게 말을 거셨습니다 . 올미스에서 왔냐고 제게 물으셔서 제가 맞다고 대답했습니다 . 사실 대답을 하며 올미스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해서 올미스를 아냐고 할아버지께 여쭸더니 할아버지는 모두가 알거라고 , 우리말로 따지자면 지방거점 대학교 같은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 , 학교에 남부의 특색이 잘 반영된 학교라고 , 그렇지 않느냐고 제게 물으셨고 제가 다른 학교는 가보지 못해서 비교를 잘 못하겠다고 말씀드리니 , 음식이나 말투가 다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탁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catfish 같은 음식은 다른 지역에 별로 없고 주로 남부지방에서 먹는 것이었고 ( 남부 지방이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 가끔 남부사투리가 진하게 느껴져 못 알아듣던 것이 떠올라 그것에 대해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 미국인의 전형적인 특성상 또 얘기를 하며 역사를 꺼내 놓으셨고 , 제가 남북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씀드리니 남북전쟁에 관해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 남부의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이겼어야 했다고 말한다면서 저에게 어떤 반응을 기대하시는 것 같아 제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할아버지는 만족스러우신 것 같았습니다 . 올미스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또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과 올미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 아무래도 정들었던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항상 제가 아시안이기 때문에 물어봅니다 . 중국인이냐 ? 일본인이냐 ?   그럼 저는 한국인이라고 대답합니다 . 그럼 가끔 더 묻습니다 노스코리안 ? 사우스 코리안 ? 그럼 저는 당연히 사우스코리안 이라고 대답합니다 . 그 만큼 한국은 미국에서 일본이나 중국만큼 인지도가 없었습니다 . 또는 주로 김정일이 한국의 인지도를 높여줄 뿐이었습니다 . 일본과 중국은 음식이나 다른 문화로 미국 또는 다른 나라에 잘 알려져 있고 세계화가 되어있는데 한국은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 스시나 중국음식은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음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 생각납니다 . 우리나라의 음식도 세계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들이 많았습니다 . 한편으로는 어떤 음식이 세계화가 되면 좋을지에 대해 친구들과 얘기해 봐도 막상 적절한 음식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 한편 여행을 많이 다니면 중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 큰소리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 , 독한 냄새가 사람은 항상 중국인이었습니다 . 사람이 많아서 빈도수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 그들 때문에 중국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 졌고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외국에 나갈 때는 제가 만들어 나가는 국가 이미지를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저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잘 받긴 했지만 교환학생 기간의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며 보낸 것 같아 후회가 많이 되었습니다 . 우선 , 우리학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학교들에서는 교환학생의 성적 인정을 우리학교처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pass/fail D 이상의 성적만 받으면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시스템을 쓰고 있었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미국인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어학에 더 신경을 쓰며 교환학생으로서 미국문화를 즐기고 영어도 익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대신 오로지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애쓰기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저의 교환학생으로서의 소중한 한 학기를 오직 영어로 책을 읽으려 애쓰고 ,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만 쓴 것이 아직까지도 후회가 됩니다 . 사실 공부한 학과 내용에 대해 회의감이 드는 이유는 영어로 전공 책을 읽는 것만이 영어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제가 한국어로 배웠다면 아주 쉽게 공부할 수 있었을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만 했던 이유는 미국의 학과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았고 , 다른 미국인들이라면 쉽게 이해했을 교수의 전달사항을 제때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 전공내용에 관한 영어 단어를 모두 외워야 하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 과목당 적어도 4 번의 시험을 보기 때문에 거의 한주에 한 번씩 시험을 본다는 부담감도 컸기 때문입니다 . 전에 학교에 메일을 드리니 교환학생의 목표는 어학이 아니라 그 대학에서 학과 공부를 해 오는 것이라 하셨는데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 똑같이 공부를 할 것이라면 우리학교에서 공부해도 충분한데 굳이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데 더 큰 의의를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 오직 저희학교만 학점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공부만 하다 왔으니 pass/fail 로 성적 변환을 하지 않으셔도 좋지만 , 현지 사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하고 온 저의 생각으로는 적어도 저 이후의 교환학생들의 성적 변환을 pass/fail 로 반영해주셨으면 합니다 .

마지막으로 저를 위해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림을 전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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