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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병석 총장 기고칼럼 ˝비정규직문제, 기본원칙으로 풀어야˝
등록일 : 2007-10-17
조회수 : 5,251
[매경광장] 비정규직문제, 기본원칙으로 풀어야

[정병석 한국기술교육대 총장]

비정규직법만큼 입법 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당사자간 이견 조정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투입된 법안도 많지 않을 것이다. 1997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면서 사회문제가 되자 2001년 7월에 노사정위원회에 비정규직대책특위가 구성됐다. 특위에서 2년여의 논의를 토대로 정부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 2004년 11월이다. 국회는 이 법안을 심의하면서 15회 이상 노사정 대표간 협의를 주도하고 또 11회 이상 노사간 논의도 주선한 후 마침내 2006년 11월에 최종적으로 법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오랜 기간 이해당사자들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법안이기 때문에 각 조항에 대해 완전한 합의를 보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의견 접근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도 금년 7월부터 시행된 이 법을 둘러싸고 또다시 노사간 첨예한 갈등이 지속되고 이랜드 홈에버 매장 점거 등의 사태도 겪었다. 이 법의 원만한 시행을 위해 지난 7월 13일에 노사정간 공동 합의문 발표가 있었는 데도 이렇게 난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가장 큰 불만은 임금 등 근로조건 차별에 있다. 은행 백화점 매장 등에서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데도 임금과 상여금은 정규직에 비해 형편없으니 비정규직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여러 설문조사에서도 비정규직의 이런 불만과 고충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라는 것이 비정규직법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일부 노동계에서 이 제도의 긍정적 효과를 크게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비정규직법안 심의 과정에서 어떤 국회의원은 복잡한 법을 만들지 말고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비정규직에게는 정규직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만 넣으면 근본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을 한 바도 있다. 유럽 국가에서는 비정규직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노사간에 갈등이 적은 것은 적어도 임금 수준에서는 불합리하게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차별시정제도의 의미는 큰 것이다.

회사에서 비정규직을 쓰는 가장 큰 유인은 고용의 유연성이다. 일시적 계절적 수요가 있을 때 비정규직을 채용해 대처하다가 그 수요가 없어지면 큰 부담 없이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다. 그래서 불합리한 차별은 시정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비정규직을 얼마나 쓰느냐, 어떤 고용형태로 채용하느냐의 선택권은 회사에서 가져야 한다.

시장경제에는 계약 자유의 원칙이 있다. 계약시 당사자간에 결정한 계약 조건은 상호간에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계약 조건이 사회통념상 지나치게 불공평하거나 불합리하다면 곤란하다. 사적인 계약에 비정규직법이 관여하게 되는 불가피성도 여기에서 인정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개별 기업의 노사 당사자가 직접 만나 격의 없이 터놓고 논의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무조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요구나 계약직을 모두 용역으로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안이 아니다.

노사간 문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법제도로 풀겠다는 생각이나,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자세이다. 법은 그야말로 사회의 규범으로서 최소한의 기준만 정하고 세부적인 운용은 회사마다 다른 여건에서 노사 당사자간 협의해서 해결해가야 하는 것이다. 과도한 욕심을 자제하고 노사가 비정규직 문제의 기본원칙에서부터 단계적으로 풀어갈 것을 권하고 싶다.
/ 07년 10월 17일(수) 매일경제 7면 '분석과 전망-매경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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